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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정자여행

이천사2 2009. 1. 14. 08:44

담양 정자여행

송강 정철 등 낙향 선비들 묵향 오롯
추적추적 비 긋는 날 느적이면 호젓


여행 포인트

전남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면서 정자의 고장이자 가사문학의 산실로도 불린다. 경치 좋은 곳마다 시인묵객들이 모여 토론하고 시 읊으며 붓질하고 잔질하던 정자들이 깔렸다. 소쇄원처럼 정자를 여러 개 앉히고 연못을 파 아름답게 꾸민 원림(우리나라 전통 정원)도 많다. 고색창연한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세상일에 휘둘리느라 후끈 달아올랐던 마음도 몸도 차악 가라앉는다. 인파가 몰리는 주말을 피해, 평일 아침나절에 둘러보는 게 좋다. 평일 아침이라면 맑은 날도 좋고 흐린 날도 괜찮다. 비가 오면 더 좋다. 비 오는 날엔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한 정자 분위기가 한결 살아난다. 운 좋으면 정자 한 채를 독차지하고 빗소리에 흠뻑 젖어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장마철 우산·비옷 준비는 필수. 맑은 날엔 더위도 피할 겸 이른 아침에 찾으면 호젓하다. 정자를 하나씩 순례하다 보면, 양반들 여가생활을 위해 지게에 술동이 지고 오르내리며 땀 흘렸을 평민들의 삶도 떠올려진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낙향한 조선시대 선비들은 대개 경치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하며 말년을 보냈다. 이들은 정자를 서로 오가고 교류하며 학문과 문학의 세계를 일궜다. 담양은 조선 중기, 정자를 중심으로 가사문학이 활짝 꽃피어난 고장이다. 송순·정철·백광홍 등 문인들의 가사 18편이 전승되고 있다.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담양의 정자·원림 중에서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원림으로 꼽힌다. 유학자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1503∼1557)가 낙향해 만든 아름다운 정원이다.

양산보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돼 세상을 뜨자 벼슬길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숲과 계류가 어우러진 이곳에 소쇄원을 만들었다. 1530년 전후에 짓기 시작해 3대, 70년에 걸쳐 완성됐다고 한다. 본디 흙돌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광풍각·제월당·애양단·대봉대 등 1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손님을 맞이하던 광풍각과 주인이 머물며 안채 구실을 하던 제월당이 남아 있다. 1755년 영조 때 제작된 목판 소쇄원도가 남아 있어 당시 소쇄원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광풍각 안에 걸린 소쇄원도에서 영조 때의 정원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3대에 걸쳐 70년 만에 완성…‘무질서한 질서’ 일품

도로변 주차장(주차료 2천원)에 차를 대고 소쇄원으로 오르면(입장료 1천원) 빽빽한 대나무숲길을 만난다. 대낮에도 좌우가 어둑어둑한, 기분 좋은 대숲이다. 대숲을 지나면 왼쪽은 온통 진초록 세상이다. 물소리 요란한 숲 안에 폭포와 다리, 연못과 돌담, 정자들이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다.

물 건너에 보이는 정자가 광풍각이다. 정자 마루에 앉으면 왼쪽으로 너럭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오래 앉아 있으면 빛도 바람도 나그네도 물소리에 묻혀, 하류 쪽 블랙홀 같은 진초록 대나무숲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조용히 앉아 있기는 위쪽 제월당이 제격이다. 광풍각이 현실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곳이라면, 제월당은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세월을 관조하며 즐기는 공간처럼 여겨진다. 오른쪽은 담과 진초록 숲이 막아서 있고, 왼쪽으론 노송 너머 산자락 위로 하늘이 트여 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이른 아침 제월당 마루에 걸터앉아볼 만하다. 산자락으로 흐르는 물안개가 숲과 정자와 나그네를 하나로 묶어, 발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빗줄기는 기왓장을 치고 나뭇잎을 치고 앞마당을 치고 나그네의 가슴을 때린다. 제월당엔 1548년 하서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사십팔영시'가 걸려 있다.

흙과 돌로 쌓은 담은 이어진 듯 끊기고 끊긴 듯 다시 시작되며 소쇄원을 감싸고 있다. 물길은 오곡문 옆 담 밑으로 흘러 폭포를 이룬 뒤 광풍각 앞을 지나 대나무숲으로 흐른다.

소쇄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맑은 날이건 비 오는 날이건 주말은 피해야 한다. 인파가 몰릴 땐 줄을 서서 정원을 둘러봐야 할 때도 있다. 호젓한 소쇄원을 맛보려면 평일, 이른 아침을 택해야 한다.

‘그림자를 쉬게 하는’ 식영정은 ‘성산별곡’ 무대


소쇄원과 함께 면앙정·송강정·식영정·환벽당 등 담양에 즐비한 정자 순례를 해볼 만하다.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송순의 정자 면앙정이 있다. 1533년(중종 28년) 송순은 중추부사대사헌에서 물러나 고향인 이곳에 면앙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면앙정로'변에 차를 대고 대나무숲 옆 돌계단을 잠깐 오르면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에 둘러싸인 면앙정이 나타난다. "너러바회 우히 송죽을 헤혀고 정자를 언쳐시니, 구름탄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로 시작하는 송순의 가사 '면앙정가'의 무대다. 기대승은 '면앙정기'를 쓰고 임제는 '면앙정부'를 지었다.

고서면 원강리의 송강정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정자다. 1584년(선조 17년) 대사헌으로 있던 정철은 동·서인 다툼의 와중에 물러나와 이곳에 있던 죽록정을 고쳐 짓고 송강정이라 이름 붙였다. 정자 정면에 송강정 현판이, 옆면엔 죽록정 현판이 붙어 있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산실이 송강정이다.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난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정자 밑 도로 옆 바위에 `송강정'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남면 지곡리에도 정철이 머물던 정자 식영정이 있다. "엇던 디날손이 셩산의 머믈며서, 셔하당 식영뎡 쥬인아 내말 듯소…"로 시작되는 '성산별곡'의 무대다. 성산은 곧 '별뫼'로 이 지역 지명이다. '식영'이란 장자의 글에서 따온 것인데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뜻이다.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정철의 처외당숙인 김성원은 여기서 정철·고경명·백광훈 등과 어울리며 공부하고 시를 읊었다. 

식영정 옆의 가사문학관에는 '면앙집' '송강집' 등 문인들의 문집들과 친필유묵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가사문학관 앞 강 건너엔 환벽당이 있다. 정철·김성원 등이 공부하던 곳이다. 정자 앞 창계천 물길엔 옛날 깊은 소가 있었는데 당시 정철 등이 뱃놀이와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바위에 '조대'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이밖에도 8월 백일홍·연못이 어울려 아름다운 명옥헌원림(고서면 산덕리)과 독수정원림(남면 연천리) 등도 찾아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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