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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① 세계문화유산 창덕궁(昌德宮)

이천사2 2008. 11. 22. 21:11

 

                             찌는 듯한  여름 어느 날

                            세계문화 유산을 구경하다.

 

                                     2007.8.2.목요일

 

 

창덕궁은 다른 고궁과 달리 자유롭게 관람할 수 없고 안내 하시는 분을 따라 다녀야 합니다.

 

매주 목요일은 자유관람일.. 전코스를  시간 제한 없이구경 할수있다.

가이드는 없으나 자유롭게 구경할수 있는 재미가 솔솔하다.<경로우대 없으며 입장료 15.000원>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었다. 그 후 세조의 비 정희황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선종 15년(1484)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 등 궁궐을 크게 짓고

창경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돈화문(敦化門)창덕궁의 정문이다. 다른 궁과 다른점은 정전과 축이 틀어져있다는 것이다.



 


 

동궐도(東闕圖) 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을 했고 가로576cm 세로 273cm이며 국보 제 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7년 12월 3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진선문 처마 마루에 있는 '잡상'이다. 이들은 모두 살을 막아주는 신(神)으로 풀이되어 있다.

진선문에는 처마 마루마다 잡상이 다섯개씩 있다. 돈화문은 일곱개,

인정전에는 아홉개씩 있다. 건물 지위에 따라 잡상의 갯수도 달라진다.



 

 

 



 

 

 

이 돌다리가 금천교(錦川橋)이다.

1411년(태종 11년)에 창덕궁을 처음 지을 때의 그 다리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돌다리가 금천교(錦川橋)이다.

1411년(태종 11년)에 창덕궁을 처음 지을 때의 그 다리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조선 궁궐에는 모두 금천(禁川)이라는 개울과 그 위를 건너는 금천교(禁川橋)가 있다.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명당수(明堂水)가 있어야 길하다고 여겼기 이라한다.



 

 

 



 

 

 

금천교를 건너면 바로 만나는 문이 진선문(進善門)이다.

일제가 없앤 것을 1997년에 다시 만들어 놓았다.

 



 

 

 



 

 



 

 

 



 

 

 

숙장문(肅章門)은 진선문과 대칭을 이루며 인정문 동쪽에 서있는 문이다.

이 문을 지나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은 빈청(賓廳)이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들이 회의실로 쓰던, 아주 격이 높은 건물이다.



 

 

 

인정문(仁政門, 보물 제813호)은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입구가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는 왕이 드나드는 어문(御門),

동쪽은 문관, 서쪽은 무관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인정전(仁政殿)인 정문에서 바라본 인정전이다.



 

 

 

 

인정전 앞에 있는 넓은 마당은 조정(朝廷)이라고 한다.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모여 조회(朝會)를 하거나, 각종 국가 중요행사를 치렀다.

가운데 어도(御道) 양쪽으로 품계석들이 늘어 서 있고, 관원들은 관직에 따라 그 앞에 위치하게 된다.

 



 

 

 

 

인정전 안에 있는 용상의 모습이다.

뒤에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펼쳐져 있다



 

 

 



 

 

 

景福宮의 勤政殿, 昌德宮의 仁政殿 등 대궐 안 正殿 앞뜰에 정1품을 선두로 해서

東班:文官은 동쪽, 西班:武官은 서쪽 자리에 두 줄로 종9품까지 차례로 세워두었다.



 

 

 

인정전에서 바라본 인정문, 뒤에 육조가보인다.




 

 

선정전(宣政殿) 
임금이 신하들과 국가의 정치를 의논하는 곳인 편전 역할을 한 곳이다.

원래 편전은 정전의 후방에 위치되나 창덕궁에서는 인정전의 동쪽에 조금 뒤로 물러나 있다.

규범을 지키되 주변 환경에 적합하도록 적응시킨 것이다.
지금 보이는 것은 최근에 다시 복원한 선정문이다

 


 

 



 

 

 

 

 

 



 

 

 

선정전(宣政殿) 에서 관광객들의 망중한


 

 



 

 

 

숙정문과 멀리 선진문이

 

 

 

세자의 처소였다가 정조 이후부터 임금의 비공식 편전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성정각 誠正閣

 



 

 



 

 

 

승화루(承華樓)는 세자 전용 도서실이었던 건물로서 당시엔 소주합루(小宙合樓)라고 했다.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헌종 13)에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은 집이다.

그뒤로,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고종황제의 외동딸이자 마지막 공주였던 덕혜옹주, 일본의 왕녀로 두 나라를 조국으로 섬겨야했던 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등 비운의 주인공들이 한많은 삶을 이곳에서 마쳤다.
 



 

 

 

낙선재(樂善齋) 
낙선재의 대청마루이다.
문살문양에도 나름대로의 멋을 내었다.
우리 전통창호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삼삼와(三三窩),



 

 

삼삼와(三三窩),



 

 

삼삼와(三三窩), 그리고 통로로 쓰던 칠분서(七分序)만 남아있다.



 

 

 

연경당(演慶堂) 안채의 모습이다. 들어열개문을 모두 걷어올려놓은 모습이 정말 시원하다.

사방에서 바람이 솔솔솔 불어오는 듯 하다. 원래 한국전통건축은 개방적이다.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에 사대부 집을 본떠 궁궐 안에 지은 99칸 집이다.



 

 



 

 



 

 



 

 

 

 


 

 

 



 

 



 

 

 



 

 



 

 

예문관



 

 



 

 

 

뿌우연 비원에서 우린 땀으로 목욕하고 나오는 데

이분들은 시원한 한복을 입고 촬영모드로 나오신다...



 

 

창덕궁 전체는 설명 못하고 간단한 방문기와 다음편은 비밀의 정원 비원을   -가람-

 

대금소리 여울지고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대가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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