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

콩 비 오던 날의 풍경

이천사2 2009. 4. 26. 12:13



콩 비 오던 날의 풍경 / 유리바다-이종인

  
봄인데도, 
반소매 티셔츠 차림의 거리에서 
먼저 목련이 지고 나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벚꽃이 지고 말았다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실직한 최씨가 성큼 들고온 막걸리 한 병, 
두어 명의 노숙자가 합세하여 
꿀꺽 넘어가는 목젖 사이로 
뚝뚝 빗방울이 떨어진다 
속사정이 뻔한 알몸의 상가 거리에는 
빨강 파랑 노랑 우산이 연등처럼 켜지는데 
조용하던 길에 자꾸 사람들이 나온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고, 
일기예보를 기대했던 최씨 손에 
물방울무늬의 우산이 접힌 채로 걸어 간다 
막걸리 한잔에 
빈 하늘 가득 물이 출렁거리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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