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정원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산이나 숲이 있으면 좋으련만
작은 개울 물 소리 들리면 더 좋을 것이고
잠 없는 나는 열심히 자고 있는
당신 간지럽혀 깨워서
아직 안개가 놔주지 않은 이른 아침 길을
풀잎에 앉은 이슬 사이로 거닐 수 있다면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하며
체조시킬 수 있었으면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여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랜 입맞춤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텁텁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기분 좋은 식사를
두 개의 잔에
은은한 향기의 차를 담아
당신에게 주고
나는 인쇄 향기가 가시지 않은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끔은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고
나는 눈을 감고 다가갈 것입니다
서툴지 않게 당신 코에 맞대고
강아지처럼 부벼 볼 것입니다
꼭 그래 보고 싶습니다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이 물러 설 즈음엔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 오래 낮잠도 자고 싶습니다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렵니다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이나
세상의 분주한 것들이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것입니다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도 싶습니다
사랑한다 말 하지 못하고 살아
미안했노라고
사랑하기 너무 벅찬 옛날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하고
겨울엔 당신을 위해
백화점에 가는 길에
눈이 내리면 더욱 좋겠습니다
봄이 되면
인근 강변 찻집에도 가고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낙엽 밟으러도 가고 싶습니다
조용한 공원에 나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위해
추억도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도 같이 찍어서
고운 액자에 담아
창가에 걸어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점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책을 한 아름 사서 침침한 눈으로 읽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생의 끝자락을
무얼하며 살겠느냐 물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 옆에서 잠이 깨고
텃밭에 가꾼 행복 냄새로 아침을 차리고
햇살 퍼지는 숲길 따라
야윈 손 꼭 잡고 거닐며
젊은 날의 추억 이야기 하며
선물로 주신 그 날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호수가 보이는 소박한 찻집에서
나이 든 옛 노래 나즈막이
함께 따라 부르며
한 마디 말 없이 바라만 보아도
무슨 말 하려는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모든 부정을 털어 놓아도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마음 나눌 당신이 있음이
지금까지 살아 온 보람이며
앞으로 살아 갈 이유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살고 싶습니다
나 사랑하는 당신과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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