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여주 신륵사

이천사2 2008. 10. 16. 22:18

신륵사의 아침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륵사 석탑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륵사 전탑(보물 226호)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륵사 앞 강가에 있는 정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230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382년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세종의 능)의 원찰(願刹)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해에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호수와 뒤로 보이는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22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했다.

1858년(철종 9)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해 중수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명부전·심검당·적묵당·노전(爐殿)·칠성각·종각·구룡루(九龍樓)·시왕전 등이 있다.

또한 다층석탑(보물 제225호)·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보물 제230호)·석등(보물 제231호) 등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웅보전인 금당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서니 고요한 아침 산사의 적막이 느껴졌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찰에 자전거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느낌이 좋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미안할 정도의 고요함이 가득한 사찰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곳인지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눈이 다 녹지 않은 마당 안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아놓은 부도인 듯 했다.

 

아침일찍 이곳에서 일출을 볼까 했지만 흐힌 날씨라 일출은 보지 못하고

사찰을 잠시 둘러보고 왔다.

'국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 태조산 각원사  (0) 2008.10.16
봉화군 청량산 청량사  (0) 2008.10.16
강화/전등사,장화리일몰  (0) 2008.10.16
강원도 낙산사  (0) 2008.10.16
고창 선운사  (0) 2008.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