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의 아침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
신륵사 석탑
신륵사 전탑(보물 226호)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신륵사 앞 강가에 있는 정자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230호)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1382년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세종의 능)의 원찰(願刹)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해에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보호수와 뒤로 보이는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22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했다.
1858년(철종 9)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해 중수했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
명부전·심검당·적묵당·노전(爐殿)·칠성각·종각·구룡루(九龍樓)·시왕전 등이 있다.
또한 다층석탑(보물 제225호)·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보물 제230호)·석등(보물 제231호) 등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대웅보전인 금당
이 문으로 들어서니 고요한 아침 산사의 적막이 느껴졌다.
사찰에 자전거가 안 어울릴 듯 하면서도 느낌이 좋았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미안할 정도의 고요함이 가득한 사찰안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곳인지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눈이 다 녹지 않은 마당 안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아놓은 부도인 듯 했다.
아침일찍 이곳에서 일출을 볼까 했지만 흐힌 날씨라 일출은 보지 못하고
사찰을 잠시 둘러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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